자기의 사용이란 깨어서 의식적으로 자신을 알고 다루는 것이다.
우리가 여러 도구나 컴퓨터를 다룰 때처럼, 어떠한 것은 정확히 알고 지시해야하며, 어떤 것은 온전히 맡겨야 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사용하느냐이다.
그것이 ‘나’라고 믿고 있거나 그래야 마땅하다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알고 있는 ‘나’는 의식의 주체라기보다는 특정 환경 속에서 연상, 학습, 기억, 관습에 의해 비유되어진 자신에 대한 인상(impression)들이 동일시하거나 각색되어진 가상의 인격일 뿐이다. 즉,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개성이고, 유일한 ‘나’가 변함없이 하나의 몸 안에 있는 듯한 존재감-이 환상은 일시적인 정신의 현상으로 경험될 뿐이란 것이다.
자신이 자신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고, 원한다면 계속 의식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또 하나의 자신을 더 유지하고픈 욕구에서 발현되는 짧은 찰라의 의지일 뿐, 자기를 사용할 수 있는 의식의 원동력이 되기 어렵다. 대부분의 ‘나’는 혼돈스럽고, 불안하며, 쉽게 두려워한다. 진정한 자기와는 거리가 있는 자신과 싸우고 왜곡되어 부정적인 지시만을 생각하기 쉽다.
다시 말해, ‘나 (self)’라는 유령 같은 존재에 대한 느낌이나 상상은 존재의 본질(essence)이 아니다. 그 현현함으로 드러난 생명체 ‘몸’과 조우하며, 스스로 진화하는 범 우주적 의식의 주체라 할 수 없다. 몸과 마음의 사용 주체로써는 갈등과 부조화를 경험케 한다. 때로는 많은 간섭과 혼돈을 초래한다. ‘나’가 아닌 ‘자기 Self’의 사용에 대해 자기 공부의 여정을 떠나는 배가 알렉산더 테크닉이라 하겠다.
이 공부의 특징은 모두에게 적용할 보편적이고 일반화된 접근법과 개인의 유형과 단계와 수준을 나누지 않는다. 모두 큰 자연원리 하에 스스로 각자의 시행착오를 겪어 나간다. 조금씩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개별화 된 공부라는 점이다.
AT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올바른 것을 반복 주입하려 하기보다, 잘못된 것이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게 되는지를 스스로 관찰하고 자각하는 방향으로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습관에서 벗어나 자신이 무엇을 맹목적으로 믿고 착각했으며 하나의 행동방식에 집착되어 있었는가를 깨닫게 할 수 있는 자각력과 자제심을 향상시킨다. 즉, 의식의 주체가 깨어나도록 돕는 것이다.
‘나’가 부여잡고 긴장하고 불안해하며 아파하기만 하는 의식의 관성-습관의 맴돌이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나 ego’에서 ‘Self’로 그 힘을 되돌려 놓게 된다. 그 힘은 곧 치유와 진화에 쓰인다.
의자에 앉고 일어서거나 서고 걷는 단순한 행동들 속에서 효율적으로 충동적 습관을 리셋하고 사용 주체를 전환시키는 과정을 꾸준히 진행하며 발전해간다.
AT는 ‘습득’이 아니라 ‘터득’이기에 그 누구도 정답을 대신 알려주는 약삭빠른 지름길 대신에
‘나 ego’의 착각에서 벗어나 자기를 믿고 자신을 닦으며, 거북이처럼 느리게....
조금은 답답해 보일 수도 있는 아주 오래된 길이다.